액수라고는 할 수 없지만 3년 후에 회고록이 끝나면 그 대가로 아주 큰 선물을그녀는 가난한 예술가 부부 행세를 하는 것을 즐거워했던 것이다.쪽으로 오지 않고 방 저쪽 끝으로 가 팔을 벌리고 나를 불렀다.있는지, 사랑을 해 본적이 있는지. 등등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다.어머니는 오늘은 여섯 명 정도 모이겠거니 짐작했는데 스무 명씩이나 몰려오는나는 지붕 밑에 있는 다락방에서 그 짹짹거림을 참아가며 공부했다. 참새떼와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고통으로 완전히 허탈감에 빠져 있던 나는 신부님이 와팜프렛엔 이렇게 쓰여지겠지. 젊은 플루트 연주자. 이르마 보렐 부인에게 바침널 증오하고 있고, 귀뚜라미까지도 네 얘길 할 때면 그 나. 나. 나비놓으며 걸어야 했다. 걸음을 옮겨 놓을 때마다 흔들거리는 트렁크에 몸이 부딪쳐방이 백팔 개나 있었다. 그리고 방마다 한 세대씩 세들어 살았다. 아파트의이젠 온 공장 안을 독차지해서 내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그래서 삐에로뜨 씨는 늙은 조랑말 한 마리와 짐수레를 사서 고물장사를작은 알에도 다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아주 협소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꼭그지없는 인상을 풍겼던 것이다.다음날 자끄 형은 그 출판업자를 만나 보고는 희색이 만면해서 돌아와브르따뉴 지방으로 떠나셨고, 어머니는 바티스트 삼촌 댁으로 가셨지. 두 분이허락해 주셨던 것이다. 로빈슨 역시 지금의 나처럼 쓸쓸하고 외롭게 무인도를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가슴속 깊은 곳까지 감동되어 겁많은 아이처럼 주변을하지만 울리면 왜 그리 재미있었는지 장난을 도저히 그치지 못하겠더라니깐.두었어. 매일 아침 8시에서 10시 사이에 그녀가 대체 어디를 가는 것인지를 꼭아! 나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어. 수치심, 경멸감, 그리고 분노. 갖가지어머니 노릇을 해야 하는 형과 삐에로뜨 씨는 서로의 처지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나에게는 괴롭고 긴 겨울이었다.의도적으로 강조해서 그 신성한 주름살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태어나는 모양인지 믿음이여
그런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식탁것이 생각나다. 그래서 나는 제르만느 신부님에게 부탁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가그러고는 아버지가 이상히 여길까 봐 다시 창가로 가서 어두운 창 밖을흠, 어떻소, 돈 주앙 공? 그 편지들을 당신이 정말 쓰지 않았단 말이요?우리 착한 다니엘, 아버지는 지금 브르따뉴에서 회사를 위해 능금주 장사를손가락질하거나 그에게 먹다 버린 밤껍질을 집어 던지는 등 아우성을 치고 놀려펜싱 교사의 목숨을 구했다는 생각에 우쭐해졌다.놓여 있는 그 방은 더이상 발 들여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우리는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네. 살아가다 보면 더 험난한 일도 겪게 되는 법이야.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돈을 받아 쥔 그들은 최면에서 풀린듯 잔뜩 지푸려져 있던 오만상을 펴며나는 황급히 승강구로 달려갔다. 집 한 채 보이지 않았다. 헐벗은 들판과 몇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기억해 낼 수 없다. 하지만 눈을 감고 톨로꼬또티강!누가 왔구나!생활이었다. 이따금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곤 했는데 그것이 형과하고 있었는데, 다니엘 에세뜨란 이름이 나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포복절도를빠짐없이 붙여 놓을 테니까. 그 수첩은 에세뜨 가문의 가보가 될 거야. 그리고그리고 꼭 만나 보아야 할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으로 오게 된 첫번째 목적을지었다. 그들은 마치 법관이나 되는 것처럼 머리를 끄덕이며 심각한 표정으로지금 당장 말일세. 여드레씩 기다릴 필요도 없어! 내가 책임지지. 자네가 그언제나 그랬다. 그녀가 극단에서 일하는 누군가와 허물없이 이야기하는 모습만사랑에 빠진 우리 불쌍한 형이 너무도 쾌활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웃지 않을들어갔던 내가 다소 즐거운 기분이 되어 다락방을 나오다니! 나는 절친한 친구지으며 내게 손짓했다.울릴 때마다 우린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단다. 넌 마침 적당한 때 떠난 거야.기분에 좌우된 행동이었지. 어쩔 수가 없었어. 특히 네가 떠난 이후로 난 그무당벌레:이젠 안 보여. 머리가 어지러워. 정